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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을 돌다




북한산의 이러한 풍경을 계속 보면서 북한산성을 도는 일, 매력적이다.

미완의 종주

만만찮은 종주 입문 코스_북한산 16성문


북한산이 지닌 다양한 지형에 맞게 산성이 축조되었다. 성을 드나드는 문을 찬찬히 들러보면 위와 같은 조형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북한산의 진짜 매력_역사의 흔적

북한산은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표적인 자연자원이다. 이렇게 거대하고 화려하고 밀집된 도시에서 버스나 지하철로 몇 정거장만 가면 이런 산이 있다니. 하지만 그 외국인들은 아직 하나만 아는 거다. 북한산의 진짜 매력은 아주 오래 전부터 주민과 시민들의 삶 속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길과 흔적들이 있다. 취향에 따라 계절에 따라 풍경에 따라 오르내리는 코스를 잡을 수 있고 북한산 곳곳에 남은 역사의 흔적을 찾는 것 또한 여느 산에서는 경험할 수 없다.
이번에는 북한산의 대표적인 역사적 유적 북한산성을 따라 돌기로 했다. 걷기 좋은 계절 5월에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연인과 함께 걷기에 좋은 코스로 추천한다. 5월 초의 황금연휴는 혼자 쓰기 미안해서 가족과 썼다면 날씨 좋은 주말 한 번쯤은 자신에게 선물하자. 취재하던 날은 미세먼지가 좀 있었다. 날씨만 잘 고르면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꽤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산 좀 탄다’는 분들은 하루에, ‘산은 좋은데 자신은 없다’는 분들은 이틀 정도에 나눠서.


북한산성의 세 가지 문. 왼쪽부터 사람들이 드나드는 대문, 비밀통로인 암문, 시신을 옮기는 시구문.



북한산성 안의 행궁으로 들어가는 입구, 중성문. 12성문을 걸으면 만날 수 없고 16성문을 걸으면 만날 수 있다.


중성문 옆 시구문. 행궁의 시신을 왕이 다니는 문으로 빼낼 수는 없는 노릇. 대문 옆에 시신을 운반하기 위해 별도의 문을 만들었다.

시작하기 전에_북한산성 12성문? 16성문?

북한산만큼 사람들이 즐겨찾는 국립공원이 또 있을까? 북한산성 성문 종주도 꽤 인기가 좋다. 근데 어떤 이들은 12성문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16성문이라 한다. 어떤 게 맞을까? 북한산성방문자센터에서는 16성문으로 안내한다. 결론 먼저 말하자면 16성문이다. 대문 6개, 암문 8개, 수문 2개다.

우선 대문은 동서남북과 중앙의 대문. 대동문, 대서문, 대남문, 북문(북쪽의 대문은 그냥 북문이라 부른다) 그리고 중앙의 중성문. 나머지 하나는? 대성문이다. 규모가 가장 큰 성문으로 도성과 행궁을 잇는 가장 가까운 통행로로 유사시 임금은 이 문을 통해 도성에서 행궁으로 들어온다.

암문은 대문 사이에 설치한 일종의 비밀통로다.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들이거나 때로 사람이 드나들기도 했다. 꼭 대문과 대문 사이에 있는 건 아니며 전략적으로 필요한 곳에 두었다. 서암문, 용암문, 백운동암문, 보국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 중성 암문. 이 가운데 백운동암문은 일제시대 이후 위문이라 부르기도 했고, 부왕동암문은 암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중성문 옆에 있는 중성 암문은 시신이 빠져나가는 문이라는 뜻에서 시구문이라고도 불렀다.

남은 건 수문 2개. 대서문과 서암문 사이에 위치한 수문과 중성문 옆 중성 수문을 가리킨다. 수문은 북한산성 중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문이고 중성 수문은 만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져버려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

12성문설은 위에 언급한 16성문 가운데 4개를 빼고 5개의 대문과 7개의 암문을 합쳐 부르는 명칭이다. 빠진 건 2개의 수문, 대문과 암문 각각 하나씩이다. 능선 상에 있지 않은 중성문과 중성 암문이 빠졌다.

요컨대, 북한산에는 16성문이 있다. 역사의 흔적을 답사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당연히 16성문을 두루 살펴야 하지만 북한산의 능선을 따르는 종주에 의미를 둔다면 12성문을 돌며 산세와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소개한 김에 이야기 하나 더. 북한산성은 조선 중기인 숙종 37년이다. 조선 중기가 어떤 시대인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왜와 청나라로부터 고통과 굴욕을 당한 직후다. 숙종은 우선 한양도성을 새롭게 쌓았다. 즉위 초부터 도성 개축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실제 다시 쌓은 건 30년이 지나서였다. 북한산성은 도성을 다시 쌓은 이듬해인 1711년에 쌓았다. 가파른 산 능선에 8km에 달하는 산성을 6개월 만에 만들어버린 거다. 날림 공사로 뚝딱 대충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청나라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병자호란의 결과로 후금과 맺은 조약에는 후금의 왕을 조선의 왕이 모신다는 조문 외에도 ‘조선은 앞으로 도성을 보수하거나 쌓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기 때문이다. 장장 7년이 걸린 한양도성은 청의 간섭이 약해진 틈을 타 조금씩 틈틈이 지었고 북한산성은 한방에 몰아쳐서 후다닥 지은 것이다. 멀고도 먼 자주국방의 길. 이제 출발.

우리는 북한산성방문자센터가 있는 은평 쪽에서 출발해 중성문을 잠시 들른 뒤 대서문으로 올라 의상능선-주능선-(우회로 거쳐)원효봉 능선을 거쳐 원점회귀할 것이다. 후기 역시 이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대서문에서 본격적인 북한산성 종주 시작. 처음엔 과할 정도로 순탄한 길.


중성문을 보고 돌아와 무량사를 거쳐 능선에 오르면...


대서문이 나온다. 능선에 올라왔다는 뜻이다. 이제 의상봉 오르러 가자.


의상능선에는 의상봉을 비롯한 연봉이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쇠줄을 잡고 오르는 코스도 잦다.


하지만 이런 구간은 힘들어서 그렇지 어렵거나 위험하진 않다.


가사당암문. 아직 갈 길이 멀다.


용출봉에 올라왔다. 하지만 넘은 봉우리보다 넘어야 할 봉우리가 더 많은 게 현실. 그러니 일단 조망을 즐기며 휴식.


이런 능선을 걷는 구간은 그리 힘들지도 않으면서 걷는 재미도 있고 보는 낙도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여기쯤부터 허벅지에서 미약하나마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오르막의 연속이다.


힘의 여유가 있는 자 조망을 즐기고, 힘이 달리는 자 뒤에서 바닥만 볼 것이니.


일반적으로 산세가 험한 곳은 산성이 낮고 치밀하지 않다.


힘들지 않은 척 올라가려 했으나 결국 멈춰서버렸다. 혼자만의 헐떡임.


이제 여기만 넘어 조금만 가면 대남문이다. 대남문부터는 산성 따라 평지 가까운 코스가 이어진다.


힘들어서 쉬는 거 반, 산세가 좋아 잠시 감상 반. 지금은 미세먼지가 없고 신록이 있을 테니 풍경이 더 아름다울 것이다.

봉우리를 따라서 / 의상-용출-용혈-증취봉의 의상능선

우리는 구파발 쪽에 있는 북한산성방문자센터에서 출발했다. 경기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북한산성방문자센터는 1년 전인 2016년 5월에 문을 열었다. 방문자센터에서는 북한산성에 얽힌 여러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지도를 비롯해 알찬 정보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탬프투어 용지를 받아 16개 성문의 현판이나 안내판에서 얼굴이 나오게 인증샷을 찍어 방문자센터에 보여주면 스탬프를 찍어준다.

코스를 짰다. 북한산 능선을 따라 한 바퀴를 돌면 어지간한 성문은 모두 돌 수 있다. 하지만 행궁으로 향하던 길에 있는 중성문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몸도 풀 겸 수문 거쳐 중성문을 보고 다시 돌아와 무량사를 지나 대서문으로 올라 능선을 따르기로 했다.

중성문까지는 약간의 오르막이지만 편안한 산책로다. 말하자면 유모차 끌고도 갈 수 있을 정도다. 날씨는 완연한 봄이라 산책만으로도 몸이 달궈져 땀이 날 듯한데, 나무들은 아직 푸르지 않다. 취재를 갔던 건 5월의 황금연휴를 맞기 전인 4월 중순이어서 사철 푸른 소나무만이 녹색을 보여줬지만 지금 같은 코스를 찾는다면 풍경은 한층 더 싱그럽고 풍요로울 것이다.

중성문을 직접 보니 12성문에 중성문을 뺀 이유를 알겠다. 엄밀히 말하자면 중성문은 북한산성의 문이 아니라 중성의 문이다. 지도를 보라. 중성문의 위치는 노적봉과 증취봉을 잇는 선 위에 있다. 두 봉우리가 이루는 협곡의 바닥, 말하자면 적이 쳐들어온다면 이 계곡을 따라 북한산 능선을 넘는 코스라는 뜻이다. 이를 막기 위해 성을 쌓았는데 그게 중성이고 중성의 대문이 중성문이다. 중성문 옆으로는 계곡이 흐르는데 중성문과 계곡 사이에 문이 하나 더 있다. 문이라기보다는 구멍인데, 성 안의 시신을 밖으로 빼낼 때 사용하는 시구문이다.

돌아서 왔던 길을 내려간다. 가다가 무량사 이정표를 따라 능선으로 올라서면 대서문이다. 대서문부터 대남문까지는 봉우리의 향연이다. 크고 작은 봉우리들은 그 자체로 요새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산성으로 메우는 모양새다. 대서문에서 처음 올라서는 건 의상봉.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의상봉, 하지만 정작 정상은 뾰족하지 않고 평탄한 편이다. 의상능선의 대표격인 의상봉은 건너편 원효암릉의 원효봉과 우뚝한 댓구를 이룬다.

갈 길이 멀다. 의상봉에서 내려서면 가사당암문이 나온다. 의상봉과 용출봉-용혈봉-증취봉의 연봉 사이에 위치한 고갯마루에 있다. 암문은 비밀통로다. 그러니 화려하게 다른 성문들처럼 누각이나 지붕을 올리지 않았다. 아는 사람 아니면 찾기 힘든 곳에 병기나 식량을 들고 나르기 좋을 정도의 크기로만 만들어졌다. 가사당암문뿐 아니라 다른 문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의상능선에서 용출봉-용혈봉-증취봉 연봉을 넘어야 한다. 가파른 오르내리막에 숨은 턱까지 차지만 눈은 호강한다. 미세먼지도 있고 신록도 거의 없었으나 북한산의 장쾌한 산세를 보는 맛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 법. 숨 돌리려 쉴 때도 모여 그런 이야기를 했다. 미세먼지만 없다면, 새 잎이 파릇파릇 났다면…. 작업실에서 이 원고를 쓰는 지금이 그때 그토록 바랐던 그런 날씨다. 하늘은 파란 수채물감을 탄 듯하고, 잎들은 짙은 녹색으로 변하기 직전이니.

세 개의 봉우리를 넘으면 또하나의 암문이 나온다. 부왕동암문. 역시 고갯마루란 얘기다. 바꿔말하면 오르막의 시작이란 뜻. 나월봉과 나한봉이 기다린다. 여기도 각도가 만만치 않아 쇠줄을 잡고 올라야 한다. 건너편 백운대와 만경대, 인수봉이 풍경으로 우리를 달랠 뿐이다. 역시 북한산보다는 삼각산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남은 힘을 짜내 봉우리를 넘으면 청수동암문이 우리를 맞이한다. 이젠 말하지 않아도 안다. 암문이 나왔다는 건 내리막의 끝이며 또다른 오르막의 시작이라는 걸. 우리 앞에는 문수봉이 있었다. 남은 체력을 쥐어 짜다시피 해서 문수봉을 넘어 의상능선의 끝, 대남문에 도착했다. 에라 모르겠다. 좀 쉬자.






북한산의 능선과 북한산성의 개념을 볼 수 있는 지형도.


대성문. 북한산성에서 가장 큰 대문으로 임금이 이 문을 통해 드나들었다.


북한산성이 잘 갖춰진 구간. 물론 조선 숙종 때 쌓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후에 복원했다.


동장대. 장수들의 지휘통제소. 두어 군데 장대가 더 있었으나 지금은 동장대만 전한다.


보국문이다. 암문답게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비밀리에 군사들이 오가고 병기와 군량미를 나르는 문이었다.


북한산과 산성, 멀리 서울의 조망.


용암문 역시 암문이다. 다음에 나오는 백운동암문까지 코스가 좀 험해진다.


말하자면 이런 구간.


드디어 도착한 위문. 산성에 붉은 빛이 도는 건 해가 저물어가기 때문이다.

산성을 따라서 / 대남문-대성문-보국문-대동문-용암문-백운동암문의 북한산 주능선

이제 의상능선이 끝났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대남문을 거쳐 의상봉을 비롯한 여러 봉우리를 넘어 대남문까지, 거리로는 6km. 중성문을 다녀왔으니 조금 더 걸었겠지만 거리보다 중요한 건 가파른 능선. 대남문에 도착했을 때 허벅지가 생생하다면 16성문이든 12성문이든 당일종주가 가능하다. 가사동암문이나 부왕동암문에서 성곽을 따라 치고 오를 때, 용혈봉이나 나월봉, 나한봉을 오르는 동안 허벅지가 뻐근해지는 걸 경험했다면 성문 종주는 이틀에 나눠서 하는 것이 좋다.

내용 나눈 것을 보면 알겠지만 성문 종주는 봉우리의 향연인 의상능선과 산성을 따라 걷게 되는 주능선, 깎아지른 원효봉 암릉 능선으로 이뤄지는데, 1/3만 마친 상태에서 ‘전력’에 손실이 생기면 남은 코스를 소화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 중에도 허벅지에서 이상신호를 보내는 멤버가 있었다. 바로 콘텐츠 원고 작업을 맡은 나다. 의상능선 마치고 주능선을 타기 시작하니 그나마 좀 나은 것 같았다. 쇠줄 잡고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간혹 나타나는 돌계단길이 약간 곤혹스럽긴 했지만, 나름대로 갈 만했다. 본의 아니게 페이스 메이커 아니 페이스 딜레이어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의상능선에서보다는 좀 나았던 것 같다. 의상능선에 봉우리가 많았다면 주능선에는 우리가 보고자 하는 문이 많다.

대남문은 원래 소남문이었다. 그리 큰 문이 아니었단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산성의 대문은 대성문인데, 대성문과 대남문의 거리는 400m 정도다. 소남문 정도가 아니라 암문이었단 설도 있는데 그럴 듯하다. 그러다 북한산성 안의 행궁을 찾은 영조가 대성문으로 들어왔다가 나갈 때 어떤 이유에선지 소남문으로 나가자, ‘그래도 임금이 지나간 문인데’ 싶었는지 문을 넓히고 누각을 올려 대남문으로 ‘용됐다’는 이야기.

대성문은 이름부터 다르다. 동서남북의 방위 대신 이룰 성을 넣어 대성문이라 지었다. 설명에 따르면 도성과 행궁을 이어주는 가장 가까운 곳에 만든 문이라고 한다. 유사시 임금이 드나드는 문이기 때문에 크게 지었다. 당연히 문 근처 공터도 널찍해서 쉬어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가야할 길과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다 부실한 내 허벅지 때문이다. 이정표상에 남은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데 해 기우는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보국문 지나 대동문에 이르러 남은 휴식시간을 몰아서 제대로 쉬기로 했다. 주말이면 휴식과 식사를 하는 인파로 북적이는 ‘대동문 광장’에 인적이 없다. 한쪽에 마련된 구급함의 상자를 열어 파스를 흠뻑 뿌렸다. 보국문으로 올라 백운대 갔다가 우이동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한때의 단골 코스였기 때문에 용암문 이후에 나올 쇠줄 코스와 나무 계단 코스를 오르기 위한 나름의 대책이었다.

동장대와 용암문을 지난다. 동장대는 전쟁이 났을 때 장수가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소다. 이 넓은 북한산에, 이 긴 산성에 장대가 하나 만 있었을까? 처음엔 남장대와 북장대도 있었으나 지금은 동장대만 남았다고 한다. 세 개의 장대 중 가장 크고 역할도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이도 소실되었던 것을 1996년에 복원한 것이다. 용암문 부근에는 유심히 봐야 할 게 있다. 바로 여장이다. 부왕동암문에도 여장이 보존되어 있다. 여장은 성벽 위에 추가로 쌓은 담장이다. 여자도 쉽게 넘을 수 있다고 해서 여장이라는 설이 있다. 여장은 요즘으로 치면 진지다. 총이나 화살을 쏠 때 군사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다. 여장에는 총신을 넣을 수 있는 네모반듯한 구멍을 만들어 두었는데 이를 총안이라 부른다. 수평으로 뚫린 건 멀리 있는 적, 아래로 경사가 진 구멍은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기 위함이다.

백운봉 암문. 백운대 코밑에 있으니 16성문 통털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문이다. 백운대를 목표로 산에 올랐다 할 때 위문에 도착하면 ‘이제 다 왔구나’ 한숨 돌리고 가게 된다. 목적지에 가까워서도 그렇지만 가파른 경사를 따라 오르다 위문에 이르면 잠시 쉬지 않고서는 갈 도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이동이든 북한동이든 백운대에 가장 직선으로 치고 오르는 코스이니 가파른 게 당연하고 산성 따라 용암문에서 오는 길도 쇠줄 잡고 오르는 구간에 이어 가파른 나무계단으로 위문에 이르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게 당연하다. 물론 나는 나무계단을 허위허위 오르다 몸이 오르기를 거부해 중도에 멈췄고, 다른 일행은 조깅하듯 가벼운 몸놀림으로 백운대까지 뛰어갈 기세로 오르기도 했다. 어찌나 부럽던지.


위문에서 잠시 바라본 백운대.


내려오는 길에 잔가지 너머로 본 석양. 이후 해는 졌고, 우리는 말없이 걷고 걸었다.

너덜을 따라서 / 백운동암문에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로 하산
북문과 서암문은 다음 기회로


결정해야 했다. 선택지는 둘. 계속 가거나 철수하거나. 우리가 에베레스트를 오르거나 어느 거벽을 초등하는 건 아니지만 계획을 취소하고 돌아서는 건 언제나 아쉬움 투성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북한산이지만 돌아서기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6시 반. 해는 넘어가기 직전이다. 요즘 같다면야 한 시간 정도 더 여유가 있겠다. 헤드랜턴이야 모두 챙겼지만, 중요한 건 원효봉에 다시 오를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 물론 내 이야기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웃긴 건, 어떤 결정을 내렸건 가는 길이 같다는 점이다. 왜 그런지 보자. 16성문을 끝까지 돌기로 했다 치자. 그러면 백운봉암문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계속 가야 한다. 그게 원효 암릉이다. 바위 타는 클라이머들이나 리지산행을 하는 이들이라면 모를까 일반인들에게는 위험한 구간이다. 그래서 우회로로 가야 한다. 그 우회로란 백운동암문에서 내려와 대동사 부근에서 다시 능선으로 오르는 것이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타는 갈림길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능선에는 북문이 있다. 거기서 원효봉을 넘으면 서암문이 나온다.

포기하기로 했으니 우리가 갈 길은 하산이다. 하산은 그냥 백운동암문에서 계곡을 따라 쭉 내려오면 된다. 내려오다 보면 대동사와 상운사를 지나 보리사를 만나게 된다. 길 건너편에 ‘북한동 역사관’이 있다면 보리사 삼거리가 맞다. 결국 16성문 종주를 하더라도 백운동암문에서 대동사까지는 내려와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백운동암문에서 대동사까지 내려오는 길에 급격히 체력이 회복이 된다면 대동사에서 일정을 바꾸어 다시 북문으로 오를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백운동암문에서 대동사까지 계곡 따라 내려오는 길이 급경사의 너덜길이기 때문이다. 오르막 경사는 근육의 힘을 야금야금 빼먹지만, 너덜너덜한 내리막길은 근육과 관절에 계속 충격을 가하면서 스트레스를 준다. 서로 말을 하진 않았지만 암묵적 합의가 이뤄진 듯했다. 안전하게 하지만 최대한 빨리 하산해서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는 밥집을 찾는 거다.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북한산성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거리는 완전히 어두워졌고, 인적은 없었으며,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은 뒤였다. 문을 연 식당을 찾았다. 가게를 정리하는 중이었지만 우리의 몰골과 표정에서 밥을 먹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북한산의 장쾌한 능선을 볼 생각에 부풀었는데 시원한 물에 얼굴을 씻고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시원한 물을 마시며 식사를 기다리니 이게 행복이다 싶다. 초록 무성한 봄이든 녹음 우거지는 여름이든 단풍 아름다운 가을이든 12성문 종주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하루에 다 돌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이 아니라 중간에 끊지 않고 ‘한 호흡’에 감상하는 맛이 있으니까. 그러려면 비상식이나 물도 여유 있게 챙겨야겠지만, 그보다도 허벅지 엔진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이 더 급하다.

종주를 목표로 했으나 중간에 내려왔으니 계획에 비추면 미완의 여행이었다. 하지만 북한산성의 이야기나 용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 중간중간 안내표지판을 읽으며 생각하며 다니느라 재미있었다. 좀더 공부하면 좀더 알찬 여행이 될 수 있겠다. 다음 여행이 그렇길 기대한다.



북한산성 개념도와 북한산성방문자센터. (서울시 은평구 대서문길 43-9. 02.359.5327)

story. 산성이 수호했던 궁궐은 어디에?
- 북한산성 행궁


북한산에서 가장 아늑하고 풍수 또한 좋은 곳에 행궁이 있었다. 행궁이란 왕이 한양도성을 벗어날 때 임시로 머무는 궁궐이다. 전쟁이나 내란이 일어났을 때 피난하는 곳이기도 하다. 남한산성에도 행궁이 있었고 수원화성에도 있었다. 북한산성 안에 있던 행궁은 보국문이나 대동문 쪽에서 가깝다. 18세기 초에 지어졌다가 1915년 산사태로 무너졌다고 한다. 자료에 의하면 115칸이었다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겠다. 현재 발굴조사를 통해 그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북한산성방문자센터를 찬찬히 둘러보면 이런 정보들은 물론 재미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quiz. 비록 종주에는 실패했지만 북한산에 있는 16개 성문을 살펴봤다. 다음 중 16개 성문에 포함되지 않는 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