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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카누이스트, 캐나디언 카루클럽 이재관 대표





“또르르 물소리가 들리고 파란 하늘과 그 안에서 자유로이 나는 새들,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물고기들과 이들을 노리며 서있는 두루미.
그리고 뺨을 스치는 기분 좋은 바람. 그 속에 내가 있고, 자연이 있습니다.”


- 캐나디언 카누클럽, 인스트럭터 이재관 대표



홍청간 하류 마곡 귀퉁이, 마치 호수처럼 잔잔한 수면이 천혜의 카누잉 장소로 제격인 곳에 캐나디언 카누클럽 이재관 대표의 카누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그의 카누와의 인연은 30년전에 시작됐습니다.

 

- 캐나디언 카누클럽 전경



산에 다니던 선배 중 한 분이 30년 전 린더 카누 수 십대를 들여왔는데 그 때 처음으로 카누를 타보게 됐습니다. 전부터 카약 투어링을 많이 다녀 카약은 지겹도록 타 봤지만 카누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 매력에 빠진 그는 수시로 선배의 카누를 빌려 타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올드 타운 카누 2대를 직접 구입하기도 했는데 그 때 구입한 카누가 아직도 클럽에 남아있습니다.


- 카누의 매력에 빠져 처음으로 구입했던 올드 타운 카누



그는 지금의 카누클럽을 시작하기 전까지 정말 많은 일들을 해왔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기계체조 선수였던 그는 운동을 그만두려고 다니던 경희고를 나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운동을 계속 했더라면 경희체대에 진학했을 것입니다. 그는 사회사업과, 지금의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해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그는 곧바로 복학하지 않고 종로2가에 있던 YMCA에서 수영강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근무 조건이 아주 좋아 선택한 것입니다. 수영장은 오전, 오후로 나눠 교대 근무를 했는데 어려서부터 산을 좋아했던 그는 같이 일하던 동료와 근무까지 바꿔가며 평일에 도봉산을 자주 올랐습니다. 혼자서 생각할 시간도 많고 조용한 게 산속에 있는 자체가 너무 좋았습니다. 도봉산 보문 산장에 거처를 마련한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을 오르내렸습니다. 그러던 중 산이라고는 북한산, 도봉산, 설악산, 지리산 밖에 모르던 그에게 전국의 명산들을 다 가볼 기회가 생깁니다.


- 게스트 하우스를 이용하는 손님들에게 바비큐를 손수 대접한다.



당시에는 YMCA를 중심으로 주변에 여행사가 많이 있었는데 수영장에 나오던 여행사 간부와 친분이 생기면서 가이드 자격으로 지리산 산행에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조용히 산 자체를 즐기는 그에게 단체로 줄줄이 이어진 산행과 뒤풀이는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형님. 이런 산행이면 다시는 같이 가잔 말 마쇼.”
“재관아. 너는 산을 수없이 많이 다닌 산악인이잖냐. 그렇다면 일반인들을 누가 안내할 수 있겠냐? 너 같은 사람이 해야 되지 않겠냐?”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였고, 또 그 말에 금세 수긍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을 달리 했습니다. 가이드를 하면 돈도 벌고 전국의 산을 다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본격적인 가이드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 클럽 안에서 운영하는 카페.


가이드 일이 생각보다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못 가본 산을 가게 되면 산 잡지를 다 뒤져서라도 모든 정보를 숙지했습니다. 그리고는 산행 내내 일행들이 지루하지 않게, 아니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맛깔 나는 이야기들을 풀어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그가 가는 곳만 따라다니는 손님까지 생겼고 다른 여행사에서도 가이드가 부족할 때마다 그를 찾았습니다. 평일엔 수영장 일을 하면서 산에 다니고, 주말엔 가이드로 산에 다니기를 3년여, 그는 YMCA를 그만두고 다시 복학을 결심했습니다. 경희고등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후배가 경희체대를 졸업하고 YMCA 수영 지도사로 왔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1984년 이었습니다.

학교를 복학한 후에도 주말에는 가이드 일을 계속해 그 수입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해수욕장,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시즌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도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또 3년이 지나고 어렵사리 번 돈으로 졸업은 했지만 취업한 동기들 얘기를 듣고 나니 전공을 살려 취업할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력서를 들고 친하게 지내던 여행사 간부를 찾아갔습니다.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대학 나온 놈이 왜 이런데서 일 할 생각을 하냐”며 이력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내몰아쳤습니다. 그는 주말 아르바이트만으로도 동기들 월급만큼 벌 수 있는 일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일주일 뒤 다시 이력서를 들고 찾아갔습니다. 반응은 같았습니다. 결국 세 번 만에 여행사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가이드는 국제부 가이드를 포함해 10년이 넘도록 이어집니다.

1993년 대명스키장에서 여러 행사를 맡아 진행한 그는 그 곳이 대박이 날 곳이라 직감하고 이듬해인 1994년, 스키장 인근에 땅을 사서 홍천 샬레라는 이름의 산장을 짓고 영업을 시작합니다. 그와 동시에 의리로 뭉친 선후배들과 함께 인제 내린천에서 래프팅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돈이 된다는 일은 가리지 않고 다 해봤다고 합니다.


- 카누 교육은 자신있지만 카메라 앞에선 쑥스럽다.



래프팅 사업은 5년 동안 이어졌는데 여럿이서 하다 보니 배당금이 많지 않아 한 사람에게 몰아주고 손을 뗐습니다. 1998년 IMF가 터진 해입니다. IMF가 터지자 수입이 뚝 떨어졌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 그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혼자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곳에서 페인트 일을 배워 번 돈을 고스란히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배운 기술로 주중에는 양평 일대의 고급 주택 페인트칠을 하고 주말에는 산장을 운영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부동산 경기가 좋아져 집값이 가장 좋을 때 산장을 판매하고 인근에 작은 목재건물을 지어 스키 튜닝 숍을 오픈합니다.


- 대명 스키장 인근에 있는 허밍버드 튜닝 숍. 이젠 튜닝의 달인이 됐다.



튜닝 숍 오픈은 무리수가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잘 되고 있습니다. 당시 스키 튜닝에 대한 매뉴얼은 익히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기술인지 알 길이 없었던 그는 스키 레이싱 서비스팀에 있던 후배를 불러 정확한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NO” 였습니다. 오기가 생긴 그는 독일로 향했습니다. 라이센스도 받지 못하는 튜닝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독일까지 갈 정도로 급박했고, 열정 또한 대단했습니다.

지금의 카누클럽을 오픈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카누 경력이 30년 이지만 제대로 배우지 않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카누클럽을 하려고 결심하기 전 3년 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렇게 긴 고민 끝에 카누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뒤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빠르게 진행했습니다. 라이센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캐나다까지 갔습니다. 그곳에서 교육과 테스트를 통과해 Recreational Canoeing Association of British Columbia Flatwater Level 4를 성공적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국내 유일의 공인 라이센스 보유자가 된 것입니다.


- 캐나다에서 카누 마스터에게 교육 받고 테스트를 통과해 취득한 라이센스.



지금의 카누클럽은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된 건물입니다. 초창기 공사가 한창일 때도 클럽 운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참 작업을 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카누를 타러 나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생한 끝에 지금의 카누클럽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카누클럽은 카누의 정석을 배울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아카데미다.



그는 카누 얘기만 나왔다하면 열 일 제쳐두고 어디든 갔습니다. 카누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카누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노력이 전혀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는지 조금씩 카누를 찾는 사람이 늘고, 최근에는 카누를 탈 수 있는 장소도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카누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재관 대표는 정석을 배워야 정석을 가르칠 수 있지 짝퉁을 배우면 짝퉁이 전파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카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레포츠를 제대로 배우지 않고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캐나디언 카누클럽은 정석을 가르치는 아카데미가 될 것이고, 카누에 대한 가이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 카누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이재관 대표.



캐나다에서는 매년 수천대의 카누, 카약이 모이는 워터워커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캐나다의 유명한 카누이스트인 빌 메이슨을 기리기 위한 행사로 카누 행사 중 가장 규모가 큰 페스티벌 입니다. 그는 한국에서도 카누이스트들이 같이 카누를 이야기하고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국의 워터워커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수가 모이지만 점점 더 많은 카누이스트들이 모이길 그는 희망합니다. 2015년 현재 그의 나이 59세, 그는 기력이 다할 때까지 카누 교육과 투어를 계속할 것입니다.






이재관 대표의 특별한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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