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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선수 출신의 프로 스노보더, 우동희 프로




‘보드를 타고 슬로프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건 아주 신나는 일이었다.
유도만 하던, 유도밖에 몰랐던 그에게 스노보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선한 운동이었다.’


오랜 시간 유도를 해온 우동희 프로에게 보드를 잘 탄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유도도 보드와 마찬가지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98년 겨울, 처음으로 스노보드를 접하고 이듬해인 99년에 강사가 될 정도로 그의 보드 실력은 뛰어났다.

 






- 용인대학교 유도학과에 입학한 우동희씨.

그의 아버지는 음대를 졸업하신 MBC관현악단 출신의 트럼펫 연주자셨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어느 날 아버지께서 섹소폰을 사오셨다. 처음 본 악기가 신기해 손에서 놓질 않는 그에게 아버지는 연주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그런데 신통방통하게도 그는 일주일 만에 악보를 보며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대견해 하시고 ‘피는 못 속인다’며 자신의 뒤를 이어 음악가가 되길 바라셨다. 그리고 그길로 피아노 학원을 등록해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게 하셨다. 그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혼자 다니는 게 싫어 동네 친구를 꼬드겨 함께 다녔다. 그 때 같이 피아노를 배우던 친구는 후에 음대에 들어갔고 중학교 때 진로를 바꾼 그는 체대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외가에서 자랐다. 체구가 굉장히 좋으셨던 외할아버지께서는 그가 운동을 하길 바라셨다. 눈을 감으시던 날까지도 “동희는 운동을 시켜야 된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외할아버지는 손주가 운동을 하길 간절히 바라셨다. 결국 그는 음악을 뒤로하고 외할아버지의 바램대로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유도는 중1때 시작해 대학에서는 선수 생활을 했다. 99년 여름, 그를 시샘한 한 선배의 악행으로 큰 부상을 당하게 되고 그 후로는 다시 유도를 할 수 없게 됐다. 옆으로 쓰러져있던 그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밟은 것인데 워낙 세게 밟혀 무릎인대가 다 끊어지고 말았다. 그 때가 스노보드를 처음 접한 다음해였다.

 

- 중학교 유도부 시절. 뒷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왼쪽 사진)



무릎 부상으로 장애 판정을 받고 유도를 접어야 했던 그는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한참 승승장구하던 때는 유도선수로 성공할 수 있을 거란 믿음도 있었지만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렸다.
그해 겨울, 그는 나름의 방법으로 재활을 하기로 마음먹고 스노보드에 올랐다. 참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보드를 타는 순간만큼은 그를 힘들게 했던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아픈 다리로 스키장에서 한 시즌을 보낸다.


- 지산 리조트에서 훈련중인 우동희 프로.



보드를 시작하게 된 건 대학에 입학한 98년 겨울, 유도만 하다가 다른 운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마침 스노보드라는 걸 알게 되고 호기심에 순식간에 빠져들게 됐다. ‘눈 위에서 운동을 한다?’ 유도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그건 아주 힘든 훈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보드를 타고 눈 위를 미끄러져 내려온다는 것은 아주 재밌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접한 스노보드, 그건 마치 마약과 같았다. 1년 중 딱 한 철, 눈 내리는 겨울에만 바짝 탈 수 있고 또 다시 8개월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시즌이 끝나고 잠깐 쉬다보면 또 다음 시즌이 간절히 기다려진다. 그 중독성에 빠져버린 것이다.


- 커스텀 보드와 함께 자니어 '레이스 프로' 장갑을 착용한 우동희 프로.



프리스타일을 거쳐 알파인 보드로 넘어 간 우동희 프로는 다행히 지금까지 큰 부상이 없었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유도로 다져진 탁월한 운동신경 덕분이다. 스키와 다르게 스노보드의 경우 양발이 묶여있기 때문에 넘어질 때 앞이나 뒤로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키를 탈 때보다 더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다. 프리스타일의 경우 점프를 하다 균형을 잃거나 잘못 착지하면 크게 다칠 수가 있고 알파인의 경우 기문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바닥에 박혀있는 폴을 손으로 치게 되면 부상으로 이어진다. 프리스타일 보드를 타던 그도 점프대에서 잘못 착지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은 누군가를 본 뒤 알파인 보드를 시작했다.


- 우동희 프로는 학교가 겨울 방학에 들어가면 시즌 내내 훈련에 돌입한다.



한 때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상금을 받을 수 있어 꽤 짭짤했다. 같은 대회에 매년 출전해 상위권을 놓치지 않으니 선·후배는 물론 주최 측에서도 우동희 선수가 대회에 그만 나오길 바랬다. 그러던 중 이번 대회 우승자는 다음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룰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점점 참가할 대회가 없어졌고, 어쩔 수 없이 프로 등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PSA(프로 스노보드 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참가해 최대한 많은 점수를 따내야 한다. 순위별로 점수를 부여하는데 한 시즌동안의 점수 합계가 높은 상위 몇 명만이 세미프로-프로 자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 선수가 된 후로는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 오로지 프로 대회에서만 순위가 정해질 뿐이다. 하지만 그 또한 재미있다. 하이클래스 선수들 사이에서 랭킹을 갈아치우는 맛이 있으니 말이다.


- 아마추어 시절 스포츠 신문에 실린 사진(왼쪽, 두 번째 선수). 하계 훈련차 갔었던 뉴질랜드에서(오른쪽).



그는 지금의 선수 생활을 단순히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를 업으로 삼으려고도 생각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도 잘 맞아 교사를 본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유도를 계속할 수 없었던 그는 대학을 마치고 바로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비록 부상으로 인해 유도를 포기하긴 했지만 운동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바로 교육자의 길이다. 대학원 재학 중 중등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졸업 후 바로 안산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첫 교단에 섰다. 그 후 10년에 걸쳐 여러 차례 학교를 옮긴 뒤 현재는 안산의 이호중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잘 맞는다. 물론 힘이 들지만 보람을 느낄 때가 많다.


- 학교에서 배구 동아리를 만들어 제자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지금은 배드민턴에 빠져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 스노보드 프로 선수로 활동하면서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장비 협찬이다. 국내 업체에서는 선수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협찬하는 경우가 드물다. 선수 스스로 지인을 통해 소개를 받거나 원하는 제품을 찾아 직접 연락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자니어 장갑이 아주 만족스럽다는 우동희 프로. 그의 보드에 유인터내셔널이 선물한 스티커를 부착했다(오른쪽).



그가 자니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된 건 7~8년 전 알파인 보드를 타기 시작하면서다. 알파인 대회의 경기 영상을 보면서 당시 유명한 선수들이 자니어 장갑을 착용한 걸 본 것이다. 그 땐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저 장갑 엄청 좋은 건가 보다. 멋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저런 장갑을 못 만들지?’ 너무 멋진 모습에 그 장갑이 마치 실력을 좌지우지하는 특별한 장비라도 되는 것처럼 꼭 가지고 싶어졌다. 특히, 한 때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오스트리아 대표 선수 벤자민 칼이 착용한 금색 자니어 장갑을 보고는 ‘와! 저 선수는 저런 장비가 있어서 잘 타는구나. 나도 한 번 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했다.


- 오스트리아 대표 선수인 벤자민 칼의 자니어 장갑. 특별 제작한 골드 글러브가 우동희 프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니어가 특별 제작한 벤자민 칼의 금색 장갑은 아니지만 최근에 그도 드디어 원하던 자니어 장갑을 끼게 됐다. 실제로 착용해 보니 너무 좋다고 한다. 부드럽고 따뜻하며 이전에 착용했던 어느 장갑보다 두툼하고 내구성이 좋아 레이스 도중 부상의 위험에서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기도 했다. 그 덕분에 레이싱에도 자신감이 더해진다. 벤자민 칼이 자니어 장갑 덕에 잘 탈 것이란 생각이 전혀 틀린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 자니어 스티커를 붙인 헬맷(왼쪽).



그는 3년 전부터 금연을 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잘 참아내고 있음은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금연을 시작한 뒤로 체중이 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10kg 이상이 늘어 몸은 점점 둔해졌고 덩달아 성적도 저조해졌다. 2년 전엔 프로 데뷔 후 가장 저조한 성적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최근 3년 동안의 저조한 성적을 다시 만회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비록 전성기 때의 기량을 발휘하진 못하더라도 이전 기량을 되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 재기를 위한 힘겨운 노력에 땀을 흘리는 우동희 프로(왼쪽). 앞으로 그의 배낭에는 자니어 장갑이 늘 함께 할 것이다(오른쪽).


- 스노보드와 함께 한 우동희 프로.



신고 계신 포인트 식스 양말에 대해


"포인트 식스 울 양말은 제가 찾던 양말입니다. 땀이 차지 않고 보송보송한 게 너무 맘에 듭니다.
이 양말을 몰랐을 땐 다른 맘에 드는 양말 한 켤레만 가지고 신고 빨기를 반복해 가며 착용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