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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행복한 사람, 남정아




“산은 나를 변화시키는 신적인 대상 같은 거예요.
굉장히 고맙고, 엄마 품처럼 따스하고, 내가 잘못된 길을 갈 때도 바른길로 갈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주는 그런 존재죠.”





처음 남정아씨를 만난 건 잡지사에 근무하던 때였습니다.
취재차 가는 산행에 그녀가 게스트로 초대 돼 동행하게 되면서 인사만 나누었는데 도봉산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그 때 느꼈던 평범한 산꾼이 아니었습니다.



남정아씨는 스물다섯에 처음 산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직장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느라 몸을 많이 혹사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하던 일도 잘 안 돼 여러 가지로 안 좋은 일들이 겹치며 스트레스로 인한 병까지 얻었습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고 얼굴도 심하게 부었습니다.
병원을 찾은 그녀는 갑상선 저하증 진단을 받고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말에 마치 시한부 선고를 받은 듯한 심정이었습니다.
한동안 우울증에 빠져 지내던 그녀가 괜스레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집 근처 남한산성에 오른 게 스스로 시작한 첫 산행이었습니다.



정상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가까운 곳에서 또래로 보이는 한 무리의 일행이 술자리를 만들어 잔을 나누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잠깐 시선을 스치긴 했지만 깊은 생각에 잠겨 먼 곳만 바라보고 있던 그녀에게 일행 중 한 남자가 다가와 같이 어울리기를 청해왔고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우울함을 잊어보려 낯선 이들과 어울려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그 때 마셨던 막걸리가 어찌나 꿀맛이었는지 잊을 수가 없어요. 그날이 인연이 돼서 한동안 그 일행들과 어울려 산에 다니기 시작했죠.”

 

- 동계 한라산

그녀는 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몸이 좋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다니길 원했지만 그 모임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혈기왕성한 청춘남녀가 친목 도모를 위해 모인 인터넷 동호회로 산 보다 이성에 더 관심을 갖는 듯 했습니다. 자연스레 산행보다 뒤풀이가 더 길어지곤 했죠.
더 열심히 산 생활을 하고자 하는 마음에 그 모임을 탈퇴하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아주 멋진 하얀 산을 보게 됩니다.
너무 멋진 모습에 반해버린 그녀는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선배로부터 ‘바위 배워볼 생각 없냐’는 제안을 받았고 설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암벽과 빙벽등반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는 망설임 없이 바위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 즈음 그녀는 선배를 통해 1975년 창립한 한국봔트클럽에 입회해 인수봉 야영장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바위 배우기에 몰두했습니다.


이후 코오롱등산학교에 입학해 모든 교육을 이수한 그녀는 8년간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꿈꿔오던 하얀 산을 보기위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로 트레킹 여행을 떠납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설산을 보고나니 산에 대한 열정이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홀로 40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그길로 ‘한국여성산악회’에 입회했습니다. 당시 ‘한국여성산악회’에서는 7대륙 최고봉 원정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프로젝트에 합류한 그녀는 남미 아콩카구아로 첫 원정을 떠납니다. 첫 원정은 정상에 오르려는 욕심보다는 원정이 뭔지, 여러 사람과 팀웍을 이뤄 등반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계기였습니다.

2010년, 그녀 나이 36세에 거벽 등반에 도전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익스트림 라이더에 입학해 교육을 마친 이듬해 1월, 익스트림 라이더에서 추진한 신루트 개척 등반 팀원으로 선정 돼 겨울에는 현지인들도 시도하지 않는 요세미티 하프돔을 6박 7일 동안 오르게 됩니다. 그때도 여자는 그녀뿐이었습니다.
“등반하는 동안 남녀를 구분하면 힘들어져요. 높은 수직의 벽에 붙어서 일주일을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좁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싸고.. 서로 배려해주길 원한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거벽등반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시산악연맹의 교육기술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을 당시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등산학교에서 서울시산악연맹으로의 강사 요청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선뜻 엄두가 나질 않았지만 이 또한 산으로 가는 방법 중 하나라 생각하고 요청에 응했습니다.
산은 여성들이 접근하기 어렵고, 거칠고 힘들다는 선입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녀에게는 그게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산악 활동할 때 거의 홍일점인 경우가 많아요. 산악회나 모임 등 등반을 갈 때 남자 선·후배들 안에서 혼자 홍일점으로 활동하곤 하죠. 등산학교 내에서도 홍일점 강사로 활동하는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즐겁고요. 인기 강사입니다.”


- 북미 알래스카 맥킨리 원정 사진1

남정아씨는 한국여성산악회에서 활동할 당시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등반, 원정팀을 꿈꿨습니다. 그리고 2012년 맥킨리 원정을 통해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셰르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히말라야쪽 등반과 달리 맥킨리는 자신의 짐과 분비물까지 모든 걸 짊어지고 올라갔다 내려와야 합니다.
그래서 더 도전할만한 곳이었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매킨리 원정 중 가장 힘들었던 건 무게와의 싸움이었습니다. 남성들보다 체력이 약하기 때문에 많은 짐들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20일 간의 식량과 장비를 짊어지고 썰매를 끌며 매킨리 정상을 정복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멋진 일이었습니다.
허나 정상에 오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고산증과 저체온증으로 고비를 넘겨야했고 결국 정상을 밟지 못한 채 마지막 캠프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경험을 한 원정이었기 때문입니다.


- 맥킨리 원정 사진2, 3

 

- 히말라야 타후라툼 원정

맥킨리 원정이후 2013년 서울시산악연맹 교육기술위원회에서 추진한 히말라야 타후라툼 원정에 합류합니다. 원정팀에는 사랑하는 후배와 존경하는 선배가 있었고 결혼을 약속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타후라툼 원정에서는 다른 대원들의 등정과정을 보조하는 베이스캠프 매니저를 맡았습니다. 베이스캠프 매니저는 원정 전후의 모든 살림과 행정을 총괄하는 자리입니다. 타후라툼 원정은 그녀에게 정상공격의 목적 보다는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더 컸습니다. 비록 원정대장님의 대퇴부 골절 사고로 원정 목표를 이루진 못했지만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 그녀의 역할에 큰 가치가 있었습니다.

7대륙, 8000m급 14좌 봉우리 등정, 이러한 도전에 남정아씨는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높은 산이든, 낮은 산이든, 잘하지 못해도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산을 오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산이 그녀에게 고맙고, 따스하며, 바른길로 갈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 존재인 것처럼 산을 품은 자연에 동화되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산에 오르고 싶을 뿐입니다.


“산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고, 생활이 바뀌었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바뀌었어요. 긍정적으로...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뀌었죠.”




- 도봉산 용어천 계곡 등반




- 남정아(75년생) 한국등산학교 강사


- 차도윤(75년생), 익스트림 라이더 31기




남정아씨의 요세미티 등반기 - http://blog.naver.com/jounganam/70104436711
남정아씨 인터뷰 영상 - http://youtu.be/1rG54BbIKkM

촬영에 협조해 주신 남정아, 차도윤씨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